콘돔을 나눠주는 이유
콘돔을 샀던 그 청소년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가 보내왔던 메시지는 청소년의 성적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는지 여실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암암리에 콘돔을 주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이라도 우리의 작은 소셜 프로젝트로 인해 콘돔이라는 건강한 피임 습관을 들이게 된다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당장에는 어떻게든 콘돔처럼 안 보이게 둔갑시키는 방법을 더 연구해보아야 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한 대안학교의 보건교사에게 교내 보건실에 콘돔을 비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얄팍한 상술을 펼치려고 드는 천하의 나쁜놈 취급을 받았었고, 인터넷에는 우리를 파렴치한 회사로 묘사한 그분의 글이 나돌았다. 대화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는 상대측의 완고한 태도로 결국 비치할 수 없었다. 그때의 그분에게 이 글을 헌정하고 싶다.
당신은 청소년을 무슨 시한폭탄처럼 여기고 성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서 그들을 보호한다고 믿겠지만, 사실 당신의 책임을 떠나 성인이 된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피임도구인 콘돔조차 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대체 어떤 이점이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섹스를 하고 안 하고는 타인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있으며, 성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피임도구를 제공하는 것과 무조건 아직 어려서 안된다고 말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불필요한 비극을 막는 데에 더 효과적일지 스스로 고민해보시길 바란다.